新林滑野草 2010. 4. 24. 10:58

병호야, 나는 너를 믿는다 - 이병호 주교
너도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사귀다보면 필요할 때가 있을테니 이제부터는 용돈을 주겠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어머니로부터 이런 말씀과 함께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갑자가 키가 한 뼘이나 큰 것 같았다. 나는 그 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몇 마리 안 되는 닭에서 얻은 계란을 모아두었다가 파신 돈이기가 십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만큼 나는 돈을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그래도 꼭 필요할 때 쓰고 나서 어머님께 돈이 떨어졌다고만 말씀드리면 어떻게 해서든 호주머니를 다시 채워주셨다. 어디에 썼느냐고 물으시는 일은 결코 없었다.
오히려 내 쪽에서 "어머님은 왜 내가 돈을 어디에 썼는지를 묻지 않으세요?" 하고 물으면 어머님은 대답하셨다. "나는 너를 믿으니까."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또 그 뒤에도 돈을 주시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실 때마다 나는 계속 키가 한 뼘씩이나 크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소풍이라도 갔다 오는 날이면 깜깜한 밤에야 집에 돌아오는 것이 예사였다. 친구들하고 동네 어귀에까지 오면 많은 어머니들이 나와 기다리시다가 각기 자녀들을 데리고 집으로 가셨다. 그러나 나의 어머님은 한 번도 그렇게 하신 적이 없었다. 자연히 다른 친구들이 엄마의 치마폭에 싸여 집으로 돌아가고 나만 혼자서 걸어가는 것이었는데, 집에 들어가면 어머님은 저녁밥을 준비해 놓고 등잔불 아래에서 바느질을 하며 기다리셨다. 내가 들어가면 반갑게 맞이하시며 말씀하셨다. "다른 엄마들이 동네 어귀까지 많이 나오셨지? 나는 왜 안 나갔는지 아니? 나는 너를 믿으니까." 나는 또 한번 키가 한 뼘이나 컸다. 그리고 엄마의 치마폭에 싸여 돌아간 친구들이 어쩐지 딱해 보였다.

"나는 너를 믿는다." 어머님은 내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성장의 계단을 하나씩 착실히 올라간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거기에다 중학교 1학년 때이던가? 여름철 어느 더운 날, 일을 하고 잠시 쉬는 사이에 어머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 어머니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네 친구이기도 하다." 친구라는 말이 그때 나를 얼마나 한꺼번에 쑤욱 크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던가!
사랑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시며 자녀에게 "나는 너를 믿는다." 하는 어머니의 말씀 속에는 종합 비타민 알약처럼 교육에 필요한 것이 다 들어 있다. 나는 그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온 몸이 기쁨으로 차 오르는 감동과 함께 절실히 느꼈던 것 같다. 라틴계통 언어에서 교육(education)이라는 말의 어원 그대로 교육이란 이미 그 사람 속에 잠재해 있던 것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정보전달을 위주로 하는 자연과학 분야에서의 학습과는 달리,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참된 의미의 교육은 남이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니다. 암탉이 자신의 체온으로 알을 따뜻하게 품어주기만 하면, 그 속에서 아주 복잡하고 신비스런 과정을 통해 병아리가 형성되듯이 사람이 되게 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경우, 물리적인 체온보다도 부모의 신뢰와 사랑이라는 온기가 결정적이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것이다.
"나는 너를 믿는다." "나는 네 친구다." 적기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런 말씀은 내 안에서 신비로운 힘을 발휘하여 속 깊이 들어있는 성장력을 자극하고 자긍심을 갖게 하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어머니에게만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거나 사소한 것으로라도 그분을 속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에 관해서도 친구처럼 다 이야기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어디서 이런 지혜를 얻으셨을까? 자녀의 성장과정에서 가장 적당한 시점을 잡아 아주 간단하지만 요술과 같은 힘을 발휘하는 말씀을 들려주실 수 있는 그 지혜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 겨우 한글을 터득하시어 책을 상당히 읽기는 하셨지만 정규교육이라고는 전혀 받아보신 적이 없는 분인데 지금도 어릴 때처럼, 나에게는 이 점이 참으로 신비롭게 느껴진다.

'내가 만난 가톨릭' 내게 주어진 제목이지만, 나는 가톨릭을 '만나'지 않았다. 나는 그 세계 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어머님, 아버님, 두 분 다 한국 천주교 초창기 박해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앙가정의 출신이시다. 그리고 내가 자란 동네가 또한 우리 나라에서는 드물게 주민 거의 모두가 가톨릭 신자들이었기 때문에동네에서는 모두가 세례명으로 통했다. 매일 새벽에 드리는 미사 말고도 아침저녁 기도, 묵주신공, 돌아가신 집안 어른들을 위한 연도까지는 십자고상 앞에 꿇어 온 가족이 함께 드리는 기본 기도였다. 그리고 농촌의 바쁜 생활 가운데에서도 성당의 각종 활동에 빠진다는 것은 머리에 떠오를 수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 전체적 삶의 분위기에서 그런 지혜가 떠올랐을까?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잔잔하게 활동하시는 성령의 비추심이었을까? 어린 나이에도 나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며, 정규교육에서는 도저히 가르치고 배울 수 없는 어떤 빛과 지혜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만남이라고 할 수도 있을 어머님과의 인연은 나에게 그런 빛과 지혜의 세계에 대해 무한한 향수를 가지게 했다.

출처 : 새수풀그라시아성가대
글쓴이 : 新林滑野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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